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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원 생활

명저로 읽는 세상 기말고사

by 결도사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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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로 읽는 세상의 마지막 시간, 기말고사 시간에 도덕경의 구절을 빌려 프랭클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도덕경 왈 도가도면 비상도라” : 진리를 진리라고 규정하면 그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프랭클린은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분명한 목표와 기준을 세웠다. 이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완벽하다는 말의 정의는 흠이 없다.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사전에 정의되어있다. 인간은 누구나 모자라고 흠이 많은데 원래 흠이 많고 모자란 이가 완벽을 이해는 해도 경험할 수 있을까? 도덕경의 첫 구절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자면 누군가 나는 완벽에 도달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프랭클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마부작침은 프랭클린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가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는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철저한 시간관리로 부와 명예와 성공을 얻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성공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물론 성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다수가 바라고 원하는 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고 이 무엇은 노력에 관한 부분이다. 아니 노력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랭클린은 거기서 멈추어 서지 않았다. 사실 이것(부와 명예)을 이룬 절정의 때로 가기 전에 20대 초반에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과 시간관리를 해왔던 것흥미롭지 않은가? 물론 본인이 노력해서 수많은 성공을 쌓았으며 돈을 벌었고 나누고 베풀며 지식을 쌓았지만 그의 목표는 돈에 있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돈을 목표로 두지 않아서 돈을 얻게 된 것이다. 돈 뿐만 아니라 명예와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이가 되었다.

 

여기서 부에 관한 부분을 잠깐 하고 넘어간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돈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그런데 사실 자본은 돈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 시대는 그것이 인간 위에 있다.

 

프랭클린은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여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을 다룰 줄 알았고 돈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그의 목표가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세운 13가지 덕목, 가치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프랭클린 자서전에 나온 프랭클린은 13가지 덕목에 대해서 내가 완벽하게 이루어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도 수많은 독서와 연륜을 쌓으며 굳이 동양사상을 접하지 않고도 그의 생각은 어느 정도 동양적 사상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서두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진리를 진리라고 할 수 없기에, 불완전하여서 완전함을 갈구하기에 재미있다. 멍청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죽음이 없고 완벽해진다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이것은 마치 평생의 숙제라고도 볼 수 있다. 배고픔이 해결된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가치와 꿈을 좇기 마련이다. 프랭클린이 다방면에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후에 만들어낸 넉넉한 삶 때문이었다.

 

21세기 고도의 현대화된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돈은 꼭 필요한 수단이 되었다. 공자나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위대하지만 굳이 그들의 삶을 온전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본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산 속에 틀어박혀서 참선하며 진리를 구하는 행동처럼 극단적인 행동 말이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그렇지만 돈이 목표가 되어 더 나은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돼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나는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은 이들이 프랭클린의 삶 속에서 단순히 노력으로 이룬 성공이라는 타이틀만 얻지 않길 바란다. 프랭클린은 더 나은 아니 완벽함을 목표로 한 인격도야를 위해서 한 평생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그것은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 사람은 목표가 사라지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 성공을 겪은 이들이 미끄러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달할 수 없겠지만, 도달할 수 없지만 그것을 목표로 두고 노력하고 조금씩 실현해나간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단순히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또 목표를 세운 당사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이제 성경 한 구절로 마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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