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김남준 목사님의 책,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를 읽고 인상깊은 부분을 밑줄을 그었는데 그 부분을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p.39 주일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예배가 주일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중심이 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p.56-58 오늘날 예배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는 죄를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만나 주심으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은혜를 베푸시고 자유를 주십니다. / 인간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인격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무한한 질적 차이와 죄 때문입니다. 이 무한한 질적 차이와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아는 단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해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p.70-71 성령 안에서 예배드린다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것입니다. / 예배 속에서 십자가 죽음과 성령의 은혜는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p.76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p.87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깨닫게 하신 신령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마음의 감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감화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가져 옵니다. 하나님은 말씀 없이 찾아오시는 법이 없습니다.
p.124-125 "하나님,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의 내용입니다.
p.159 신령한 기쁨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시련보다도 더 큰 사랑이 있었습니다. 환난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기쁨이 하나님을 넘치도록 섬기게 하였습니다.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였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 생활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재산이 아니라 은혜가 헌금하게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를 통해 얻은 교훈은 이것입니다. "은혜의 기쁨이 있으면 넘치도록 헌금할 수 있다."
p.184 찬송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p.188 찬송다운 찬송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마음을 집중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러자 백성 전체가 거대한 성가대가 되었습니다. 은혜에 대한 현재적인 체험이 있을 때 찬송은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옵니다.
p.192-193 찬송에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형식과 자유의 조화입니다. / 예배 시간이 너무 긴 것도, 너무 짧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속에서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실 여지를 남겨 주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아껴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p.199-200 우리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합니까? 이 질문은 주님이 찬송 받으시는 이유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창조하심과 선택하심, 구원하심과 은혜 주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p.216 죄는 지을수록 사람을 더 속박하는 힘이 있습니다. 죄는 죄지은 자를 종 삼으려고 합니다.
p.224 주님이 구하시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을 가진 예배자들입니다. '상한 심령', 이것은 원어적으로 '깨어진 심령'이라는 뜻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은 '짓이겨져 으깨어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사랑과 자기 의에 대해 깨어진 마음입니다.
p.231 하나님은 범죄의 크기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뻔뻔함에 진노하십니다. 범죄한 다윗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번제도 아니었습니다. 원하시는 것은 상한 마음이었습니다. 통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었습니다.
p.236-237 신학적으로, 안식일과 주일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두 날이 서로 신학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마침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안식일의 중심 개념은 쉼이었습니다. 이후 안식일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됩니다. 즉 그날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건져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중심 개념이 구원이 되었습니다. / 두 날이 구속사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일과 안식일은 질적으로 같지 않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 통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새 언약이 시기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주일의 중심은 율법이나 인간의 편의가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입니다. / 주일은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서평,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 자(孟子) (0) | 2023.03.13 |
---|---|
논 어(論 語) (1) | 2023.03.13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0) | 2023.03.13 |
팀 켈러의 탈기독교 시대 전도 (0) | 2022.12.23 |
[독후감] 베니스의 상인 (0) | 2022.08.19 |
댓글